강원도에 남은 메밀만두
밀가루 등의 반죽을 얇게 펴 그 안에 여러 재료를 넣고 싼 다음 익혀 먹는 음식을 만두라 한다. 세계 곳곳에 이 만두와 비슷한 음식이 있다.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이탈리아의 라비올리가 있겠고, 폴란드의 페로기, 네팔의 모모, 남아메리카의 엔파나다,중국의 바오즈, 일본의 교자 등등이 있다.
만두의 조리적 장점은 피로 싸여 있는 소의 맛을 잘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피로 인해 소가 보이지 않으니 이를 먹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음식 먹는 즐거움을 안겨준다.
이런 까닭에 만두와 같은 음식이 온 지구에 널리 퍼져 있는 것이다. 한국 만두와 가장 유사하며 조리법에서도 오래도록 서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만두로는 중국의 바오즈 또는 교오즈, 일본의 만쥬 또는 교자를 들 수 있겠다.
회회인의 상화
2008년 개봉한 쌍화점이라는 영화는 고려가요 쌍화점에서 힌트를 얻어 제작된 것이다. 그러나 고려가요의 이름과 그 시대적 배경만 따왔지 가요의 내용과는 관련이 없다. 고려가요 쌍화점은 한 여인네가 이곳 저곳에서 남자의 유혹을 받는다는, 요즘으로 보면 ‘야설’에 드는 노래이다. 그 첫 소절은 이렇다.
“雙花店에雙花 사라 가고 신□(이 부분의 [□]은 [□+ㅣ+ㄴ]이다.), 回回 아비 내 손모글 주여이다.”(쌍화점에 쌍화 사러 갔더니 회회아비가 내 손목을 쥐더이다.) 쌍화를 상화(霜花)라 쓴 문헌도 있다. 쌍화점은 쌍화 또는 상화를 파는 가게라는 말이다. 이 쌍화 또는 상화가 만두 비슷한 음식이다. 요즘은 거의 쓰지 않지만 조선말까지는 상화가 문헌에 흔히 보인다.
1809년 빙허각 이씨가 엮은 [규합총서]에는 상화 만드는 법이 적혀 있다. 밀가루 반죽을 발효해 쓰는데, 밀기울 죽과 누룩가루를 섞어 하룻밤 삭힌 것을 반죽에 더하는 방법이 소개되어 있다. 막걸리를 써도 된다 하였다.
이렇게 발효를 하면 반죽이 부풀게 되고, 여기에 껍질 제거한 팥을 넣고 둥근 모양을 만들어 시루에 찐다. 이 조리법대로이면 지금의 찐빵과 흡사하다. 제주도에서는 밀가루에 술을 더하여 부풀린 반죽으로 떡을 만드는데, 이를 상애 떡이라 부른다. 상화가 ‘상애’로 남아 있는 것이다.
쌍화점에 등장하는 회회 아비는 이슬람교도의 아랍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려는 원에 의해 복속된 기간이 상당하다. 원은 당시 다민족의 세계국가를 이루고 있었다. 역사학자들은 고려도 여러 민족이 뒤섞여 살았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고려시대 아랍인이 경영하는 가게의 아랍 식 만두가 현재 우리가 먹는 만두 또는 찐빵의 ‘원조’일 수도 있는 것이다.
만두는 밀가루가 있어야 가능한 음식이며, 중앙아시아가 최초의 밀 재배 지였으므로, 회회 아비에 의한 만두의 전파는 고려에서만의 일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만두는 귀하였다
고려가요에 상화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한반도에서 만두는 흔한 음식이 아니었다. 밀이 귀하였기 때문이다. 밀이 한반도에서 재배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으나, 재배 시기가 같은 보리에 밀려 재배 면적이 적었다. 한민족은 쌀을 주식으로 선택하면서 입식(粒食)의 전통을 세우고 분식(粉食)을 별식으로 밀어버린 결과이다.
밀이 없다고 아예 만두를 빚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메밀은 한반도 어디서든 잘 자라고 재배기간도 무척 짧아 한반도의 농민은 밀 대체 곡물로 메밀을 선택하였다. 1670년경 안동 장씨가 쓴 [음식디미방]에는 메밀만두가 기록되어 있다.
메밀가루를 되직하게 반죽하여 개암 알만큼씩 떼어 빚는다. 만두소 장만은 무를 아주 무르게 삶아 덩어리 없이 으깨고 꿩의 연한 살을 다져 간장 기름에 볶아 백자, 후추, 천초 가루로 양념하여 초간장에 생강즙을 하여 먹도록 한다”
라고 적혀 있다.
메밀은 밀과 달리 발효를 하여도 부풀지 않는다. 따뜻한 상태에서는 흐물흐물 힘이 없고 식으면 딱딱해진다. 만두로 찔 만한 재료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메밀로라도 만두를 빚어 먹으려 했다는 것은 만두가 주는 매력이 상당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한국의 만두가 대부분 밀가루 반죽을 부풀리지 않고 빚는 까닭도 이 메밀만두에 익숙해진 입맛의 전통에 따른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강원도에 남은 메밀만두
한국전쟁 이후 밀가루가 흔해졌다. 원조물자로 미국의 밀가루가 공급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만두도 흔하여졌다. 길거리 좌판에 만두가 등장하였다. 한국식 전통 만두를 앞세운 식당은 그로부터 한참 후에 외식업계에 등장하는데, 1980년대 한국의 외식산업이 부피를 키우면서 덩달아 생겨난 전통음식과 향토음식에 대한 수요가 집안에서 먹던 만두를 불러낸 것이다.
외식시장에 나온 한국 전통 만두는 평양식이니 개성식이니 하여 북녘 음식임을 주장하고 있다. 물론 밀가루 만두이다. 그러면서 메밀만두는 좀처럼 보기 어렵게 되었다. 만두를 빚기에 적당한 밀가루를 값싸게 구할 수 있는데 굳이 메밀가루로 만두를 빚을 필요가 있는가 싶었던 것이다.
지난해 2월 수요미식회 만두 편에서 나는 메밀만두가 꼭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내 말을 들었는지 어땠는지 메밀만두집이 나왔다. 그때에 제작진이 큰 고생을 하였다는 말을 들었다. 메밀만두 내는 식당이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때에 나도 메밀만두 맛있는 집을 떠올려보았는데 쉽지가 않았다. 그럼에도 강원도에서는 메밀만두 내는 집을 가끔 본다. 막국수집의 사이드 메뉴로 올라와 있다. 비슷한 위치에 있는 감자전에 비하면 인지도가 퍽 떨어지기는 하지만 말이다.
메밀만두를 빚어본 사람들은 안다. 메밀을 반죽하여 피를 만들고 여기에 소를 담아 싸기가 여간 까다롭지가 않다. 글루텐이 없이 잘 펴지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강원도 여행길에 메밀만두가 보이면 꼭 먹어보라 권한다. 이를 빚어내는 공력만 생각하여도 참 귀한 음식이다.
글 : 황교익, 유명 칼럼니스트, tvN 수요미식회 패널리스트, 강원도 명예도민
사진 : 황교익, TV조선 황교익의 죽기 전에 꼭 먹어야 할 음식 101 제작팀, 이승근 인제군청 문화관광과, 양구군 문화관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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