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싸한 추위…펄떡거리는 삶, 고성의 生冬感…
곰치, 도치, 장치……못난이 삼형제 겨울철 효자어종
겨울별미 곰치국 한 그릇이면 추위 거뜬하다
금빛 물결 헤친 배엔 곰치, 도치 가득
예전만 못하지만 뱃일은 살아가는 희망
고기잡이에 나선 배들이 밝힌 불빛이 수평선을 물들입니다.
호흡 척척, 손발 척척 나란히 그물을 걷어 올리는 어부의 주름진 얼굴에 미소가 번집니다.
금빛 물결을 따라 항구로 돌아온 뱃사람들이 금싸라기 같은 생선들을 부둣가에 쏟아냅니다.
그물에 잡힌 도치와 곰치, 명태, 참송어 등이 펄떡 펄떡 기운을 토해냅니다.
아침을 가르는 경매 소리와 어부들의 바쁜 손길들로 포구는 시끌벅적합니다.
경매에 모여든 상인들로 어판장은 갓 잡아 올린 생선처럼 싱싱하게 살아 움직입니다.
경매 받은 생선을 양손 가득 들어 보이는 할머니의 표정엔 삶의 활력이 느껴집니다.
바로 ‘사람 사는 냄새‘입니다.
‘못난이 삼형제‘라 불리는 도치, 곰치, 장치는 명태가 사라진 강원도 고성의 겨울철 효자 어종입니다.
포구를 돌아보고 출출해진 배는 겨울별미인 곰치국과 도치알탕 한 그릇이면 산해진미도 부럽지 않습니다.
씹을 것도 없이 후룩후룩 넘어가는 데다, 시원하면서도 개운한 맛이 일품입니다. |
겨울 고성의 즐거움은 또 있습니다.
거세진 파도가 갯바위를 두드려대는 해안도로를 느긋하게 달려도 좋고, 호젓한 백사장을 거닐어도 충분합니다. 하늘은 두드리면 금세 ‘쨍그랑‘하는 소리가 날 듯 코발트 빛으로 청명합니다. 바람 끝은 매웠고 방파제를 넘는 파도는 거셉니다. 동해안 고성으로 막바지 겨울여정을 떠나봅니다. 최북단 뱃사람들의 삶의 현장에서, 설악의 칼 바람 속에서도 번쩍 정신이 들게 하는 청량한 기운이 가득합니다.
동해 최북단 포구마다 넘치는 힘……희망을 낚는다!
고성 최대의 항구인 거진항은 활기차다. 이른 새벽 거진항 너머 수평선 위로 고기잡이에 나선 배들이 밝힌 불로 바다는 대낮이다. 일출의 금빛 물결을 따라 항구로 돌아온 뱃사람들이 금싸라기 같은 생선들을 부둣가에 쏟아낸다. 생김새가 심통 맞게 생긴 생선이 쏟아져 나온다. 고성의 못난이 삼형제로 불리는 도치, 곰치, 장치다. 한때 명태의 천국으로 불렸던 거진항이지만 명태가 사라진 그 자리를 제철 맞은 못난이 삼형제가 대신하고 있다.
아침을 가르는 경매 소리와 모여든 주변 상인들로 포구는 갓 잡아 올린 생선처럼 싱싱하게 살아 움직인다.
올챙이를 뻥 튀겨 놓은 듯 ‘불친절‘하게 생긴 도치가 가장 많이 거래된다.
경매가 끝난 도치와 곰치는 대부분 인근 식당으로 팔려간다.
“예년보다 못하지만 요즘 도치가 가장 많이 잡히고 곰치는 귀하게 올라온다!”면서 “그래도 바다 일이 천직이니 올 한 해도 열심히 그물질을 해야죠.” 어판 장에서 만난 어부는 어획량이 준 것보다 앞으로의 희망을 이야기했다.
긴 장화에 고무장갑으로 무장한 어부들은 뜰채를 움켜지고 고기를 나르는 데 여념이 없고 다른 한 쪽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아낙의 손놀림도 점점 바빠진다. 그물 깁는 아낙들 곁에는 장작불이 피워져 타닥거리며 타오른다.
생선을 큰 고무그릇에 풀어놓고 행인의 발길을 붙잡는 상인의 손길에서도 삶의 활력이 느껴진다.
활기찬 포구를 봤다면 이젠 겨울별미를 맛볼 차례. 거진항과 대진항에는 추위에 언 몸을 뜨끈한 국물로 달래줄 식당이 많다.주로 파는 음식은 곰치국과 도치알탕이다. 추위를 단번에 날려주는 곰치국은 두말할 필요 없는 인기 메뉴. 이름 그대로 주재료는 곰치다. 우리나라 해안 전역에서 잡히는데 부르는 이름은 차이가 있다. 동해에서는 곰치 또는 물곰, 남해에서는 물메기,서해에서는 물텀벙이라고 부른다.
곰치가 사랑 받는 건 오직 ‘맛‘ 때문이다.
포악한 성격과 못난 외모와는 달리 혀끝에서 녹아 내리는 부드러운 속살과 시원한 국물 맛이다.
남해에선 맑은 탕으로 내지만 최북단 고성은 묵은지를 넣어 끓여낸다.
걸쭉하면서도 칼칼한 곰치국은 시원하면서도 개운한 맛이 일품이다.
도치알탕은 암컷의 알과 내장, 데친 도치 살과 함께 끓여내는데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는다.
씹을 것도 없이 후룩후룩 넘어가는 데다 부드럽게 씹히는 알의 식 감이 재미있다.
고성 사람들이 도치를 즐기는 방법은 알탕 외에 몇 가지가 더 있다. 숙회와 무침, 알 찜이다. 수컷을 끓는 물에 데친 뒤 적당한 크기로 썰어 살짝 익히면 도치숙회가 된다.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쫀 득하고 꼬들꼬들한 식 감에 깜짝 놀란다.
장치는 사나흘 말려 꾸덕꾸덕해지면 콩나물을 넣고 매콤하게 찌거나 무를 넣고 조린다.
대진항에는 국내 최북단 유인 등대인 대진등대가 있다.
관광객들에게 개방된 대진 등대는 다른 등대와는 달리 낭만보다는 분단과 적대, 그리고 긴장이 느껴지는 곳이다.
대진과 마차진 사이의 곶에 우뚝 선 등대는 1973년에 세워진 것. 지금이야 대진에서 북쪽으로 마차진을 넘어 저진도등까지도 고깃배들이 넘나들지만, 유신 선포 직후 남북의 갈등이 가장 첨예하던 시절에는 대진 등대가 곧 북방어로한계선의 기준이었다.
등대에 올라서면 대진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맑은 날에는 북녘 해금강까지 보인다. 늘어선 배들이 아침 햇살을 받아 파도에 고개를 끄덕인다. 갈매기들도 정박한 고깃배들 사이로 오가는 날갯짓이 여유롭다.
해안도로를 달리는 드라이브도 고성여행의 즐거움이다. 거진항에서 화진포로 이어지는 구간이 바로 그곳.
비록 짧지만 파도가 넘실거리는 갯바위를 따라 달리는 맛은 매혹적이다.
‘겨울 바다로 가자 메워진 가슴을 열어보자……
너에게 있던 모든 괴로움들은
파도에 던져버려 잊어버리고……
겨울 바다로 그대와 달려가고파’ 푸른 하늘의 ‘겨울바다‘가 절로 흥얼거려진다.
거진항 조금 못 미처 만나는 화진포는 강과 바다가 닿는 곳에 생긴 석호다.
넓은 갈대밭 위로 철새가 날아드는 화진포는 겨울 바다 못지않은 서정을 전한다.
이승만, 이기붕, 김일성 등 남북의 권력자들이 사용하던 별장도 있다.
해양박물관에서 시작해 이승만 전 대통령 기념관을 지나 수변을 따라 화진포를 한 바퀴 도는 코스는 드라이브나 산책하기에 그만이다. 억새가 피어난 수변 어디서나 물오리들이 수면을 박차고 오르는 모습이나,
순백의 깃털을 가진 대백로가 우아하게 날갯짓을 하는 모습을 만날 수 있다.
▲ 여행메모
- 가는 길 : 경춘 고속도로 동홍천IC를 나와 44번 국도를 이용해 가다 인제를 지나 진부령을 넘어가면 거진항, 대진항이 나온다.
- 먹거리 : 거진항이나 대진항에는 곰치국과 도치알탕 등을 잘하는 집들이 많다. 거진항의 소영횟집(682-1929)은 생대구지리탕과 도치알탕을 내놓고 어전(681-5014)은 김치를 넣어 개운하면서도 시원한 곰치국과 제철 활어가 유명하다. 제비호식당(682-1970)과 대진항 금강산회집(682-7899) 도루묵찌개와 도치알탕을 잘한다.
- 볼거리 : 북방식 전통가옥의 원형이 잘 보전돼 있는 왕곡 마을은 들러볼 만하다. 일출을 조망할 수 있는 공현진 옵바위와 청간정, 천학정 등도 좋다. 철새도래지로 잘 알려진 송지호와 금강산 천년 고찰 건봉사, 화암사도 빼놓지 말자. 남쪽의 최북단인 통일전망대는 저 멀리 북한의 해금강과 금강산을 조망할 수 있다. 출입통제가 될 때도 있어 사전에 전망대 출입여부를 확인 하는 것이 좋다.
- 글ㆍ사진 : 조용준, ‘여행을 부르는 결정적 순간’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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